AI-assisted 태그는 어떤 글에 붙여야 할까
최근 Claude에 텍스트 워터마킹 기능이 발표되는 것을 보면서,1 제 블로그에도 비슷한 고민을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 블로그에 있는 기존 글들에 ‘AI-assisted’ 태그를 붙이기 시작했고, AI 도움 없이 쓴 글에는 ‘Human-written’ 태그를 붙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EU AI Act 제50조가 요구하는 것과 같은 규제적 의무는 없지만,2 독자에게 이 블로그의 글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태그를 실제로 붙여보면서 부딪힌 문제와, 그 문제를 풀면서 도달한 결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태그 한두개로 명확히 분류되지 않는 상황들
’AI-assisted’와 ’Human-written’을 이분법으로 나누면 깔끔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글쓰기 과정을 하나씩 대입해보니 단순히 AI냐 사람이냐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AI와 아이디어를 놓고 대화하고, AI가 참고자료를 찾아주고, 그 대화를 바탕으로 AI에게 초안 작성을 시킨 후에 제가 검토 및 수정을 합니다. 이 블로그의 글 대부분이 이런 과정으로 작성되었는데, 지금은 AI-assisted 태그를 달아두었지만 초안을 AI가 썼으니 Human-assisted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네요.
둘째, 제가 초안을 직접 쓴 다음, 가독성과 구조를 다듬기 위해 AI에게 편집을 맡깁니다. 그런데 사람 편집자가 다른 사람의 글을 다듬어주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걸 두고 “editor-assisted”라고 태그를 붙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AI 편집이라고 왜 달라야 할까요.
셋째, 글을 작성하면서 검색엔진으로 참고자료를 찾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합니다. 제 경험만 봐도 요즘은 구글 검색에서조차 기존 검색 방식보다 AI 모드와 요약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됩니다. 이건 “Google-assisted” 글쓰기일까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어떤 하위 작업을 도구에 맡긴다는 점에서는 첫째, 둘째 사례와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입니다.
’AI-assisted’라는 단일 태그는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뭉뚱그립니다. 하지만 AI가 하는 역할은 리서치 보조, 문장 편집자, 공동 사고자, 대필 작가까지 전부 다르고, 이 중 대부분은 기존에도 최종 결과물에 공개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던 역할입니다. LLM이 관여된 경우만 예외로 한다고 해도 태그 하나로는 여러 상황들의 차이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결국 AI가 사실 확인만 한 경우까지 AI가 글을 대신 쓴 경우와 똑같이 표시하며 과잉 공개를 하거나, 반대로 실제로는 상당 부분을 아웃소싱 했는데도 아무런 태그 없이 사람이 직접 쓴 글과 동일하게 올리게 됩니다.
이중 잣대의 정체
그렇다면 왜 검색엔진이나 사람 편집자의 도움은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질까요. 그런 도움이 결과물에 기여한 몫이 작아서가 아닙니다. 전체 과정에서 작성자 본인이 들인 시간과 사고의 총량이 여전히 컸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작업에 도구, 그 중에서도 AI를 이용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작성자(글의 소유권자 내지는 책임자) 본인이 실제로 얼마나 생각했는가”라는 질문의 대리 지표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대리 지표는 제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앞서 든 세 가지 사례에서 이 지표가 부적합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도구의 정체(검색엔진인지 AI인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신호지만, 그 신호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실질(사람의 사고량)과는 항상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워터마크나 C2PA(콘텐츠 출처 인증에 쓰이는 표준 기술) 같은 콘텐츠 출처 서명 기술은 “어떤 도구가 이 콘텐츠를 생성했는가”는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생각했는가”는 증명하지 못합니다. AI 생성물의 품질을 평가한 연구(약 2,000명의 사람과 2,500개의 LLM 판정자를 동원한 실험)에서 AI 사용을 스스로 공개한 글이 더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결과도 있었습니다.3 정직하게 공개하는 쪽이 윤리적으로는 맞는 선택인데, 독자의 반응에서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태그를 붙이는 일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2025년 9월 arXiv에 게재된, AI ’슬롭(slop)’을 정의하고 측정하려 한 연구도 같은 지점을 다른 각도에서 짚고 있습니다. “AI가 생성하지 않은 텍스트도 ’슬롭’으로 인식될 수 있고, AI가 생성한 텍스트라고 해서 전부 ’슬롭’으로 읽히는 것도 아니다.”4 무엇이 슬롭인지를 가르는 것은 애초에 어떤 도구가 텍스트를 만들었는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관심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여부였고, 이는 앞서 든 세 가지 사례에서 계속 부딪혔던 것과 같은 지점입니다.
결론: 작성자의 노력과 결과물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AI 사용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할 게 아니라, 콘텐츠의 품질과 가치,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의 노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AI의 도움을 받아 쓴 글이라도 독자에게 충분한 가치를 주고, 한 번의 프롬프트로 뽑아낸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의 사고와 시간이 들어간 결과물이라면, 그것이 100% 사람이 쓴 글인지 AI가 도운 글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째 사례의 글들을 지금 와서 “Human-assisted”로 다시 붙이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태그가 노력의 대리 지표로 쓰이는 이상, “어느 단계를 누가 썼는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중요한 질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Clay의 공동창업자 Varun Anand가 회사의 ‘AI 글쓰기 정책’5을 공개하며 남긴 말이 제 결론과 정확히 같은 지점을 짚고 있었습니다. “짧은 프롬프트로 문서를 생성해놓고 독자에게는 그 길어진 결과물을 읽게 만든다면, 그건 독자의 시간을 무시하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그 글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보다는 길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 시간을 독자에게 증명하는 것은 단순히 태그를 다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저는 투명성을 위해 이 블로그에 ‘AI-assisted’ 태그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이런 라벨을 신경쓰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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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Claude’s text watermarking works”: Claude가 생성한 텍스트 및 파일에 워터마크를 적용한다는 Anthropic의 공식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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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50: Transparency Obligations for Providers and Deployers of Certain AI Systems”: EU AI Act 제50조 공식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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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alizing Transparency? How AI Disclosure and Author Demographics Shape Human and AI Judgments About Writing”: 2025년 7월 arXiv 연구. 사람 평가자 1,970명과 LLM 평가자 2,520개를 동원해, AI 사용을 공개할 경우 글에 대한 평가가 낮아진다는 결과를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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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suring AI ‘Slop’ in Text”: 2025년 9월 arXiv 논문. ’슬롭’을 AI 생성 여부가 아니라 관심과 노력의 부재로 정의하고 측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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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un Anand, “We just instituted an official AI Writing Policy”: Clay의 AI 글쓰기 정책을 소개한 LinkedIn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