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간, 세 가지 역할: 독자가 달라지면 규칙도 달라진다
세션이 끝날 때마다 기분 좋게 위키를 닫곤 했습니다.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메모,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지?”
위키 안에는 업무 관련 메모도 있었고, 개인적인 생각도 있었으며, 언젠가 블로그에 올릴 글의 초안도 있었습니다. 모두 같은 공간에 뒤섞여 있었습니다.
하나의 공간, 세 가지 역할
처음에는 단순했습니다. “내 두 번째 뇌”를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고,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다른 목적들이 생겨났습니다.
첫째, 이 시스템의 구조와 템플릿을 개인 위키와 분리된 별도 레이어(Kit)로 두고 싶었습니다. 저만의 맥락이 섞이지 않는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이 여정 자체를 블로그에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이 시리즈처럼요.
문제는 세 가지 역할이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진다는 점이었습니다.
- 개인 위키에는 업무 클라이언트 이름이나 개인 재무 정보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절대로 공개되면 안 되는 내용들입니다.
- Kit은 시스템의 구조와 템플릿을 담는 공간이라 저만의 맥락이 섞이면 안 됩니다.
- 블로그 글은 이 과정의 솔직한 기록이지만, 특정 클라이언트나 비즈니스 세부 정보는 포함할 수 없습니다.
세 가지가 한 공간에 뒤섞여 있다면, AI 에이전트가 작업할 때 경계를 지킬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AI 에이전트에게도 ’출입 구역’이 필요하다
해결책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레이어를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 Personal (
wiki/,raw/,index.md): 완전히 비공개. 개인 PKM의 핵심. - Kit (
kit/): 범용 제품 레이어. 개인 맥락 없음. 한국어 우선. - Story (
story/): 공개 내러티브. 재무·개인 정보 없음. - Meta (
meta/): 내부 운영 계획.
그리고 AGENTS.md에 각 레이어의 규칙을 명시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작업을 시작할 때 어느 레이어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고, 그 레이어의 규칙을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변경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아닙니다. 저라는 사람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그 역할들 사이의 경계를 AI 에이전트가 대신 지켜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에이전트에게 맥락만 주면 알아서 잘 구분하겠지 하는 기대는 위험합니다. 규칙은 명시되어야 합니다.
레이어를 나누자 생긴 것들
분리하고 나서 의외의 이점이 생겼습니다.
Kit 레이어를 만들면서, 제 시스템의 어떤 부분이 “일반적으로 통하는 원리”이고 어떤 부분이 “저만의 특수한 상황”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구분하게 됐습니다. 개인 위키에서는 두 가지가 뒤섞여 있어도 제가 맥락을 알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 맥락을 배제해야 하는 레이어를 따로 만들다 보니, “이건 사실 보편적인 원리가 아니라 내 특수한 상황에서만 통하는 방법이었구나”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시스템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레이어 분리는 그 효과를 구조적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다음 편 예고
레이어를 나눈 후 저는 더 많은 소스를 빠르게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I 에이전트가 조용히 제 판단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조용한 잠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AI PKM에서 특히 위험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